조선왕조실록이란?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연월일의 순서에 따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역사책이다.
완질의 분량이 1,893권 888책(약 6,400만자)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이면서 이를
2백자 원고지에 옮기면 그 높이가 63
실록의 봉안 : 1부는 춘추관에, 4부는 지방의 외사고에 봉안
⑥ 세초 및 세초연 : 사초, 시정기, 중초는 세검정 일대 개천에서 물에 씻고, 종이는 재생.
차일암에서 세초연을 열어 편찬에 참여한 관원들을 격려
(4) 조선왕조실록 기록의 주체, 사관
1) 사관 : 역사를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관리
①
데에 가장 필요한 기록에 대해서 철저하 고 엄격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조선왕조실록이다. 이 글에서는 조선왕조가 남긴 세계 최고 의 기록이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문화유산인 실록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그 역사적 가치 와 우수성에 대해서 서술하기로 한다.
Ⅱ. 조선왕조실록 개관
춘추관의 사무를 담당하여 사초와 시정기를 작성했는데 이를 사관, 또는 한림이라고 불렀다.
춘추관은 1356년 사관으로 개칭했다가 1362년 다시 춘추관이 되고, 1389년에 예문관을 합해 예문춘추관이 됐다.
2. 사관
이들은 신분은 낮았으나 임금의 곁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관계로 가장 청화한 벼슬
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란?
기록유산은 단독 기록일수 있으며 기록의 모음(archival fonds)일수도 있다. 주로 두 가지 경우로 나뉘는데 기록을 담고 있는 정보와 그 기록을 전하는 매개물이다.
- 필사본, 도서, 신문, 포스터 등 기록이 담긴 자료와 플라스틱, 파피루스, 양피
실록을 온전한 모습으로 남겨주었다.
1) 분산보존
실록은 실록의 보관을 위해 특별히 세워진 사고(史庫)에서 보존되었다. 사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실록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일이었고, 조선초기의 사고운영은 고려시대의 예를 그대로 따라 내사고인 춘추관사고와 외사고인 충주사고 두 곳
Ⅰ. 개요
조선왕조는 고려 500년 동안 시련과 진통을 겪으면서 배워온 주자학을 바탕으로 지식인 관료들의 중앙집권적 문치주의를 우리의 실정에 맞도록 정착시킨 국가였다고 할 수 있다. 당나라의 귀족문화와 원나라의 세계문화를 종합하고 우리의 토착문화를 가미하여 우리의 독창적 문화를 건설
실록의 손상을 막음
<실록형지안>
사고의 문을 열 때마다 그 목적과 진행 상황을 일일이 기록한 자료
이 형지 안에 따르면 건물을 수리하거나 실록을 봉안할 때 사고 문을 열었고
포쇄(가장 빈번함)의 경우에도 문을 열었다.
포쇄 : 오래 보관하고 있던 서책이 훼손되거나 또는 병충해의 침해를
실록이 편파적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자기 당파의 입장에서 실록을 다시 편찬
개정 범위에 따라 달라짐.
개정 범위는 집권한 당파의 세력 여부에 달려 있었다.
세력이 강대 > 전면적 개정 / 세력 강대X > 부분 개정
개정판 존재 > 공정성이 훼손X : 반대 당파가 만든 실록을 없애지는 않았음
조선 초
실록 봉안사 가 오늘 배사하였습니다마는 전주 사고 가 아직 조성 되지 못하였으니, 조성이 된 뒤에 출발시켜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미 재상 에 대한 경차관 을 두었는데, 또 봉안사로 하여금 수손전 을 순심 하라 하시니 미편 합니다.”하니 전지 하기를, “오백창의 일은 들어줄 수가 없는 것